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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AI 시대, 대학 교육은?

⑤ 대학이 추락한 곳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문제

4편까지의 이야기는 교육의 질에 관한 것이었다. LABA에서는 되는데 강의실에서는 안 되고, 안 되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가장 두려운 건 따로있다.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안타깝지만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이걸 설명하려면 좀 멀리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대학이라는 기관이 왜 생겨났는가를 한번 생각해보자. 중세 유럽의 대학들이 존재했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지식이 희소했기 때문이다. 책이 귀했고, 전문가는 드물었고, 구조화된 지식에 접근하려면 학자가 있는 곳까지 물리적으로 가야 했다. 대학은 지식이 태어나고 성장해 살아가는 곳이었다.

그런 네트워크 속에서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장소 이상이었다. 전문가가 맥락을 잡아주며 학습을 이끌어주는 멘토쉽이 있었고, 비슷한 수준의 동료들과 부딪히며 사고를 키워나가는 광장으로 기능했으며, 사회가 신뢰하는 자격을 부여하는 시그널도 있었으며, 평생의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네트워크의 장이기도 했다.. 대학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서, 사람을 성장시키고 사회적 이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대학은 이 여러가지의 기능 중에서 지식의 전달에만 점점 더 집중하게 됐다. 교수는 강의보다는 연구에 더 큰 인센티브를 가지고, 학생과의 밀도 있는 접촉은 줄어들고, 대형 강의는 대학 교육의 기본 형태가 됐다. 사고를 키우는 것, 방향을 잡아주는 것, 사람 대 사람으로 부딪히는 것, 이런 것들은 비용이 많이 들고 성과로 측정하기 어려우니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AI가 등장하기 전에도 이 상황에 대한 비판은 존재했다. "대학은 실용적 기술을 안 가르친다", "학위는 능력의 증명이 아니라 신호일 뿐이다", "온라인으로 다 배울 수 있는데 왜 비싼 등록금을 내냐." MOOC이 등장했을 때 대학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비판들은 현실에서 크게 먹히지 않았다. 온라인 강의가 대학을 대체하지 못한 건, 사람들이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이 지식 전달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AI는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MOOC과 같은 영상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볼 수 있게 했을 뿐 학습 경험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AI는 다르다.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춰 설명하고, 질문에 즉시 반응하고, 학습 경로를 개인화한다. MOOC이 대학의 문을 넓힌 것이었다면, AI는 대학이 하던 일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버린 것이다. 지식 전달은 물론이고, 무엇을 어떤 순서로 배워야 하는지를 설계하고 안내하는 것까지도.

그러면 대학에는 무엇이 남는가?

대학이 지식 전달 외의 기능들을 제대로 해왔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했을 것이다. AI가 지식 전달을 가져가더라도, 대학만이 줄 수 있는 것이 명확하게 남아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대학은 이 역할을 그다지 잘 해오지 못했다. 평생 지식 전달이 대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던 사회에서, 그 지식 전달의 역할을 AI에게 빼앗기고 나니,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일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온 것이다.

사실 대학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한 이야기인데, 내가 정말 두려운 건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더 큰 부산물이다. 대학이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하고 흔들리는 그 빈자리에서, 새로운 종류의 불평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내 강의실에서 이 빈자리가 어떤 모습인지를 이야기해보겠다. 대형 강의는 썩 좋지 못한 교육이지만 그래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순기능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모두에게 같은 것을 주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잘하는 학생도 그 이상으로 올라가기 어렵고 (그래서 나쁘고), 못하는 학생도 그 이하로 떨어지기 어렵다(그래서 좋다고 할 수 있다). 천장이 낮은 대신 바닥도 받쳐주는 구조. 탁월한 교육은 아니지만, 어떤 학생이든 평균 근처는 보장되는 평준화 장치로는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AI는 이런 사회적 기능을 속절없이 해체한다. AI를 잘 활용하는 학생은 천장 없이 올라간다. 목적이 분명하고 AI를 도구로 쓸 줄 아는 학생은 예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속도로 성장한다. 반면 그렇지 못한 학생은 예전과 똑같이 강의실에 앉아 있다. 바닥은 그대로지만, 천장은 하늘 위로 날아간다. 이게 내 강의실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같은 학과, 같은 학년,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인데,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LABA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히려 그 일부라고 볼 수 있다. 한 학기에 선발되는 네 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교수 개인에게 매우 보람되는 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나머지 수백 명은 강의실에 그대로 앉아 있다. 나는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실험을 하면서, 동시에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잘 가르치는 교수일수록, 소규모 수업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수록, 혜택을 받는 소수와 받지 못하는 다수 사이의 거리는 벌어진다. 이 모순을 풀 수 있는 건 개별 교수가 아니라 시스템인데, 4편에서 봤듯 우리 시스템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학은 자기 존재 이유를 잃어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AI가 만들어내는 격차 앞에 무력하게 서 있는 것이다. 대형 강의가 해주던 평준화 기능이 사라진 자리에, 그 빈자리를 AI는 새로운 사회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연재에서 이야기한 문제들은 결국 하나의 혼동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과 사람을 교육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보아온 혼동. 다음 글에서는 이 혼동이 만들어내는 위험한 착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