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강아지 유치원만도 못하게 추락한 대학
3편까지 읽은 분들 중에는 이런 의문이 드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좋으면 왜 다 그렇게 안 하냐고. 당연한 질문이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그러한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니. 그리고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대학 등록금이 강아지 유치원만도 못한 사회의 현실과 마주한다. 이 문제는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소위 교육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강의 방식을 참여형으로 바꿔야 한다, 평가도 객관식과 단답형이 아니라 학생의 사고력과 성장을 키우는 방향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너무나 맞는 말이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왜 이 당위가 개별 교수의 책임으로 주어지는가? 교수가 수업 방식을 바꾸면 된다, 교수가 평가를 혁신하면 된다. 그런데 교수 한 명이 70명을 데리고 참여형 수업을 어떻게 하라는 건가? 등록금이 동결된 상태에서 소규모 분반을 어떤 재원으로 운영하라는 건가? 교육부가 커리큘럼을 틀어쥐고 있는데 어떤 자율성으로 교과를 개편하라는 건가?
내 개인적인 상황은 이런 현실을 정확히 보여준다. 나는 LABA를 운영하고 있지만, 학교로부터 어떤 강의 시수도 인정받지 못한다. 비용 지원도 없다. 방학 중 부트캠프도, 매주의 랩미팅도, 수시로 이루어지는 피드백도 전부 개인적인 시간과 에너지로 할 뿐이다. 내가 LABA를 계속하는 유일한 이유는, 이게 옳다고 생각하는 교육자의 신념과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해보자는 의지 뿐이라, 이런 실험은 나와 소수의 학생에게서 그칠 수 밖에 없다. 교육은 개인의 신념과 의지에만 기대서 돌아갈 수 없다.
LABA에서 벌어지는 일이 가능한 이유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학생이 네 명이기 때문이다. 네 명이니까 각자의 방향을 보고, 사고를 교정하고, 의욕이 꺾이면 다시 세워줄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단순한 해법은 교수 한 명당 학생 수를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듣기만 해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가? 왜 불가능한지를 파고들어 보면, 문제들이 서로 물고 물려 있어서 어느 하나를 고친다 해도 나머지가 버티고 있는 구조가 드러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은 교수 한 명당 학생 60~70명이다. 소규모 멘토링은 아무리 양보해도 10명 내외에서만 작동하는데, 현실은 그 여섯 배에서 일곱 배다. 그런데 대학본부는 이 비율을 개선하기는커녕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더 적은 교수로, 더 많은 학생을 가르치라는 압력이 매년 강해지고 있다. AI로 강의를 하면 훨씬 더 많은 학생을 가르칠 수 있지 않냐는 소리를 하는데, 이건 터무니없는 자가당착이다.
그럼 교수를 더 뽑으면 되지 않냐고 할 텐데, 그럼 돈이 문제다. 대학 등록금이 16년 가까이 사실상 동결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물가는 올랐고, 인건비는 올랐고, 기술 환경은 완전히 바뀌었는데, 대학의 수입은 제자리에 머물렀다. 영어유치원과 강아지 유치원 학원비는 월 200만원씩 지불하면서, 월로 환산해 60만 원이 채 안되는 대학 등록금은 비싸다고 아우성이다. 돈이 없으니 교육의 질이 저하되고, 교육의 질이 떨어지니 돈을 지불하려는 의사는 더욱 낮아지는 악순환이다.
그래서 있는 자원이라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려 하면, 이번에는 자율성이 없다. 교육부가 대학의 거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이 자체적으로 교육 과정을 개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LABA 같은 프로그램도 비즈랩이라는 기존 제도의 틈새 안에서 가능한 것이지, 정규 교과 전체를 이런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현재 규제 구조가 허락하지 않는다. 강의 시간을 채우고 채우지 못하는 것 같은 형식적 요건들에 천착하는 현실에서, 이런 시도를 하는 교수는 오히려 징계를 먹지 않을까?
나아가 당국이 하고 있는 일을 보면 더욱 답답해진다. 작년 말 교육부는 대학 AI 활용 윤리 가이드라인 시안을 내놓았는데, 학생이 과제를 제출할 때 AI 활용 내역을 명시해야 하고, 지침을 어기면 부정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LABA에서는 학생들이 AI를 거의 모든 학습 과정에서 쓰고, 그 결과 코딩을 모르던 학생이 한 학기 만에 포트폴리오 최적화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이 도구를 어떻게 활용해서 교육을 혁신할 지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이미 깨겨버린 형식을 유지하기 위해 AI를 통제할 생각을 하고 있다.
강의실을 연극판으로 만들면서, 대본을 보고 연극하지 말라는 식이다.
그래, 백 번 양보해서 이 모든 장벽을 뚫는다 해도 마지막 벽이 남는다. 사람이다. 교수들은 이런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 박사과정은 자신의 연구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지, 학생을 어떻게 가르치고 이끌어야 하는지를 배우는 과정이 아니다. 지금 이런 역량을 갖추고 있는 교수가 있다면, 그건 시스템 덕이 아니라 개인의 성향과 노력 덕이다. 시스템이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스케일러블하지 않다. 그리고 이건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원에서 교수가 학생을 자기 연구를 위해 착취하거나 논문을 위한 데이터 수집 도구로 소모하는 건 이미 사회적으로 알려진 문제다. 나는 비즈랩을 학생의 성장을 위해 운영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구조가 교수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소규모 프로그램이라는 같은 형식이, 누가 운영하느냐에 따라 학생을 키우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학생을 소모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자, 그러니 다시 한번 전체 그림을 살펴보자. 비율을 개선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이 없으니 효율화를 해야 하는데 규제가 막고 있고, 규제를 풀어도 가르칠 사람이 없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강의를 참여형으로 바꾸라"는 조언은 공허한 당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건, 대학이 이 교착 상태에서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대는 2025년부터 한 강의에 400명에서 1,000명까지 수용하는 초대형 하이브리드 강의를 시범 도입했다. 하버드의 CS50이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강의를 롤모델로 내세우면서, 수강신청 대란 해소, 학생 선택권 보장, 사회 전체의 지적 능력 향상 같은 장점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하버드가 대형 강의를 운영할 수 있는 건, 그 뒤에 소규모 분반 세미나와 촘촘한 TA 시스템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대형 강의는 입구일 뿐이고, 실제 교육은 소규모 분반에서 일어난다. 한국 대학은 그 입구만 가져오고, 뒤에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알고도 그런다면 사기와 다름없고, 모르고 그런다면 정말 큰 문제다.
우리 학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 때 비대면의 맛을 봐서 그런지 교육혁신처에서는 500명씩 때려 넣고 영상으로 가르치면 되지 않냐는데, 그게 과연 "교육혁신"인지 어이가 없다.
다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공정하게 생각하자면, 이건 대학이 나빠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벌어지는 일이다. 교수를 줄이고 학생을 늘리면 당장 재정은 숨통이 트이고,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건 눈에 바로 보이지 않으니 일단 미루게 되는 것이겠지. 하지만 여기서 한 발짝만 더 생각해보자. 대형 강의란 무엇인가. 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같은 내용을 같은 속도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건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대형 강의를 확대하겠다는 것은,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에서 AI와 직접적으로 경쟁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AI가 못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 소규모 멘토링, 사고의 교정, 밀착 피드백, 방향을 잡아주는 대화. 그러나 우리는 정확히 그 반대로 가고 있다. AI가 제일 잘하는 걸 더 하겠다고 하면서, AI가 못하는 것은 줄이고 있다.
이것이 LABA에서 가능한 것들이 다른 강의실로 확장되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내가 정말 두려운 건 이 구조가 만들어내고 있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인데, 다음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