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싸게 후려치는 연극 티켓과의 작별
이 연재에서 다섯 편에 걸쳐 이야기한 것들을 돌이켜보면, 결국 "지식과 교육은 다르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1편에서 AI로 로보틱스를 2주 만에 배운 건 지식의 습득이었지만, 3편에서 학생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그 가정이 맞아?"라고 되물어준 건 교육이었다. 결국 AI가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지식 전달이고, 아직 하지 못하는 것은 교육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둘을 오랫동안 같은 것으로 취급해왔고, 대학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곧 교육이라는 전제 위에서 운영되어 왔다.
이 전제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에 거기서 위험한 착각이 생겨난다. AI로 인해 교육이 싸고 평등해질 것이라는 착각.
AI가 대체하는 건 지식 전달이다. 교수 한 명이 70명에게 같은 내용을 같은 속도로 전달하는 일은 우리가 교육이라 불러왔지만 사실은 교육이라 부르기 어려운 것이다. 다만 싸기는 했다. 헌데 AI가 이 저렴한 부분을 대체하고 나니, 비싼 부분만 남은 것이다. 소규모 멘토링, 사고의 교정, 밀착 피드백. 이것이 AI 시대에 대학이 해야 할 일인데, 이 일(즉, 교육)은 돈이 든다. 그것도 많이.
LABA는 교수 한 명이 학생 네 명을 본다. 같은 수의 학생을 이 방식으로 가르치려면 교수가 열다섯 배 이상 더 필요하다. AI가 아무리 좋아져도 사람의 사고를 교정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일은 사람만 할 수 있고, 사람은 한 번에 소수밖에 볼 수 없다. 줄일 수 없는 비용이다. 게다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희소하고, 그 사람을 키우는 체계는 아직 없으니, 비용은 이중 삼중으로 쌓여간다.
지식은 싸지고 있지만, 교육 변함없이 비싸다. 하지만 사회는 이 둘의 차이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왜 사람들은 강아지 유치원에 월 200만원을 기꺼이 내면서, 대학 등록금 월 60만원은 비싸다고 할까? 사람들이 강아지를 유치원에 보내며 저 큰 돈을 내는 건 누가 손목을 비틀어서가 아니지 않는가. 거기서 받는 것의 가치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 말인 즉슨,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고 느끼는 건 대학이 주는 것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가치를 왜 느끼지 못할까? (이렇게 말하면 혼날 곳이 많겠지만) 아마 진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도, 학부모도,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도 전부 마찬가지다. 중고등학교부터 주입식으로 지식을 전달받고, 대학에서도 똑같이 지식을 전달받고, 그게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니, 경험해본 적 없는 것의 가치에 기꺼이 돈을 낼 리가 없다.
이건 비단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능으로 학생의 진짜 역량을 측정할 수 있는가? 양적 KPI로 사람의 진짜 능력을 볼 수 있는가? 이런 방법들은 대형 강의와 마찬가지로 싸고 편한 방법이지만, 동시에 형식적일 뿐 본질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이 사회는 매번 비싼 본질보다는 값싼 형식을 택해왔다.
어쩌면 이건 피할 수 없는 유산이었는지도 모른다. 40년 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이 되려면 속도가 생존이었고, 속도를 내려면 본질보다 형식이 효율적이었다. 대량으로 빠르게 줄 세우고, 싸게 처리하고, 형식적인 숫자로 측정하는 것. 우리는 그렇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문제는, 이 형식 위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다음 세대의 교육을 설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질이 아닌 형식만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이 형식을 재생산하고 있다.
같은 패턴은 교육 뿐 아니라 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작동한다. 대치동 입시강사의 족집게 과외에 수백만원을 쓰는 학부모, 유튜브 자칭 전문가의 몇 분짜리 영상으로 뭔가를 알게 됐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두쫀쿠 유행이 들불처럼 올라오다 눈녹듯이 사라지는 따위의 것들처럼 빠르고 손 쉬운 방법에 달려들었다가 식으면 다음 것으로 옮겨가는 패턴이 교육에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무서운 건 우리 사회의 사람들이 형식인 줄 알면서 형식을 택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형식이 본질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예전에 한 변호사를 만난적 있는데, 서울대 출신에 대형 로펌 소속으로 이른바 이 사회의 슈퍼 엘리트다. 그 사람은 자기가 아직도 매일 수능 수학 문제를 몇 개씩 풀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자신은 공부를 놓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들으면서 참 헛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는데 수능 문제는 암기와 반복 숙달의 퀴즈이지, 지적 역량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이 그 구분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회계학에는 Substance over Form이라는 원칙이 있다.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봐야 한다는 원칙이다. 경영대학에서는 첫 학기에 배우는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는 이 원칙을 잘 모르고 살고 있다.
형식 위에서 성공한 사람에게는 형식이 곧 본질이다. 연극이 연극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다음 연극을 무대에 올려놓고 있다. 그렇기에 이 거대한 극장의 불을 켜고, 무의미한 연극을 끝내는 일은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싼 일이다. 하지만 저렴한 싸구려 연극 티켓과는 이제 이별해야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