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한 편의 잘 짜여진 연극이 되어버린 나의 강의
나는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수강의상을 수상한 적도 있고, 강의 평가도 대체로 좋은 편이며, 학생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 그런 내가 요즘 강의실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미안함이다.
이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하려면 작년 말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내가 운영하는 비즈랩의 학생들과 함께 로봇을 만들어보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면서, 로보틱스를 공부할 일이 생겼다. AI가 없던 시절 같았으면 아마 교보문고에 가 '로봇의 이해' 같은 책들을 몇 권 사온 뒤 첫 장부터 읽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로봇의 역사, 산업용 로봇의 분류 따위의 것들에 대해 형광펜을 긋고, 밑줄을 치고,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나아갔겠지.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같은 사람이 이 분야의 기초적인 맥락을 잡으려면, 아마 수개월은 충분히 걸렸으리라.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서점에 가는 대신, AI에게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자 AI는 내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무엇을 건너뛰어도 되는지를 바로 알려주었다. 목적을 주니 그 목적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지식의 지도가 눈 앞에 펼쳐진 셈이다. 그런 과정을 1~2주 정도 반복하니, 예전 같았으면 공과대학에서 몇 년을 배워야 생겼을 수준의 맥락이 잡히기 시작했다. 물론 디테일에서는 당연히 공학 전공자에 미칠 수 없겠지만..
재밌고, 신나고, 고맙고, 놀라웠다. 그리고 곧바로 불편한 생각이 따라왔다.
우리 학생들도 이렇게 배우는게 더 낫겠지? 목적만 명확하다면, AI에 물어보고, 필요한 지식을 자기 속도에 맞게 잡아가는 방식으로 배우는게 이리도 효율적이거늘.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나라는 교수의 강의는 학생이 접할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지식 전달 경로였지만, 이제는 전혀 그렇지 않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강의실에서 70명 앞에 서서 같은 내용을 같은 속도로 전달하고 있는 이 시간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학생 각자가 AI와 한 시간 동안 자기 수준에 맞게 몰입하는 것이, 내 강의를 듣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아니, 나 역시 경험해보니 알겠더라. 당연히 더 낫겠지. 불편함과 미안함, 그리고 불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리고 이 변화는 교육의 공급자인 나보다 수요자인 학생들이 더욱 빨리 느끼고 있었다. 며칠 전 한국일보를 보니, 「"교수님 강의보다 AI가 나아"…대학 수업 시간 '딴짓' 늘어나는 이유는」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여러 대학의 익명 커뮤니티에서 수업 태도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쪽에서는 딴짓하는 학생들을 비판하고, 다른 쪽에서는 교수 강의보다 AI나 유튜브가 낫다고 반박한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모두가 동일한 현상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대학의 강의실이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현상. 하지만 현실의 강의실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수업이 진행된다. 나는 무언가를 열심히 가르치는 척을 하고, 학생들은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는 척을 한다. 강의 시수를 위해, 전공 학점을 위해.
어느 순간부터 나의 강의실은 한 편의 잘 짜여진 연극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