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地代)를 성과급이라 부르는 착각
올해 SK하이닉스 직원 1인당 (이른바) 성과급이 최고 6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삼성전자 노동조합 역시 영업이익 15% 배분을 요구하며 18일간의 총파업을 예고했다. 이어 카카오, 현대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으로 파장의 도미노가 이어지고 있다. 노사 모두 성과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사실 지금 벌어지는 사태는 성과급에 대한 논쟁이 아니다.
경제학에서 성과급이란 개인의 한계 기여(marginal contribution)에 비례하는 변동 보상이다. 지금 SK하이닉스 임직원이 받는 보상은 전혀 개개인의 기여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불과 2년 전 같은 회사가 영업이익률 마이너스 67%를 기록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직원들의 노력이 갑자기 몇 배로 늘어나 작금의 흑자를 만들어낸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학계는 이를 'pay for luck', 즉 운에 대한 보상이라 부르며(Bertrand and Mullainathan, 2001), Garvey and Milbourn (2006)은 지금과 같은 호황기에 운에 의한 보상이 비대칭적으로 거대해진다는 점을 실증했다. 즉, 현재 반도체 기업의 성과와 그에 따른 보상은 한국 반도체 클러스터라는 지정학적 입지, 엔비디아의 발주, 미·중 갈등에 따른 반사이익이 합쳐져 만들어진 지대(地代, rent)를 임직원이 나누는 구조에 불과할 뿐, 본질적으로 성과에 따른 보상 체계가 아니다.
제대로 된 성과 보상 체계의 설계
지금 노사가 논의하는 설계는 경제학과 경영학이 지난 수십년간 쌓아온 인센티브 이론의 거의 모든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첫째, n빵 구조는 집단적 도덕적 해이(Holmstrom, 1982)를 부추겨 그 누구도 한계 노력을 추가로 쏟을 이유을 없앤다. 성과급이라는 이름의 제도가 도리어 조직의 근로 의욕을 꺾어버리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모택동의 사회주의 농장이 왜 실패했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둘째, 영업이익의 9할은 HBM 가격, 엔비디아의 발주, 환율, 미·중 관계 등 직원이 통제할 수 없는 거시적 외생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작금의 보상이 과연 누가 무엇을 잘해서 주어진 것인지 가려내지 못한다(Holmstrom, 1979). 그 결과 직원은 자신의 보상이 실제 행동과 무관하다는 점을 학습하고, 기업은 도대체 누구의 어떤 성과에 거액을 지출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촌극이 빚어진다.
셋째, 호황기 입사자는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막대한 부를 쥐고, 불황기 입사자는 같은 일을 더 훌륭히 해내고도 빈손에 머무는 기형적인 코호트 로또(cohort lottery) 구조에서는 신입 사원의 경력 설계가 직무 전문성의 축적이 아니라 입사 타이밍에 대한 베팅을 누가 얼마나 잘했는지의 요행으로 변질된다.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의 뼈대가 되는 장기적 인적자본 투자 동기는 무너지고 만다. 한의대/의대를 보면 알 수 있다.
넷째, HBM을 실제로 개발해 낸 핵심 엔지니어와 그렇지 않은 부서가 동일한 비율로 보상을 나눈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문제다. 자신의 압도적 기여가 조직의 평균치에 허무하게 묻히는 것을 목도한 핵심 인재들은 외국 경쟁사로 이탈할 강력한 유인을 얻는 반면 대다수의 무임승차자들은 조직에 안주하려 들 것이다. 지금의 구조는 핵심 인재를 유출시키고 저성과자를 잔류시킬 뿐이다.
그러면 소위 성과급 체계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답은 단순하다. 기본급은 시장 임금 원리로 보장하되, 변동 보상은 한계 기여를 측정할 수 있고 그 영향력이 큰 자리에 차등 지급해야 한다. HBM4 양산 수율을 끌어올린 수석연구원에게는 파격적인 장기 베스팅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을 주고, 성과 측정이 어려운 직군은 안정적인 기본급과 안전·품질 지표 중심으로 보장하는 식이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전 직원이 똑같이 나누는 기형적인 제도는 학술적으로 보면 인센티브 시스템이 아닌 지대 추구에 불과하다.
더 큰 질문: 그렇다면 이 '지대'는 누구의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지금의 거액이 성과의 보상이 아니라 지대의 분배라면, 그 지대를 과연 누가 가져야 하는가. 임직원인가, 주주인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구인가. 본질적으로 성과급이 아닌 n빵 구조에서는 어떤 분배 단위도 그 자체로 선험적으로 도덕적 우선권을 가지지 못한다.
임직원에게 분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통념은 그것이 '개인의 성과에 대한 보상'이라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한다. 이 전제가 무너지면 분배 단위의 선택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단위로 분배하는 것이 더 공정한가. 임직원끼리 나눠먹는 것과 사회 전체가 나눠먹는 것 중에 무슨 차이가 존재하는가? 오히려 사회 전체가 나누는 것이 더 공정하다는 논의가 가능하다.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카이스트와 포스텍, 국가 산업단지, 전력망과 용수, 환경 비용 부담까지 수십 년간 시민들의 세금이 누적된 인프라가 구축해 준 입지 지대다. 만약 이를 내부에서만 나눠먹는다(나눠먹는다는 표현이 중요하다. 현재 구조는 성과급이 아니기 때문이다.)면, 공공이 만든 가치를 사적으로 전유하는 것일 뿐이다(Mazzucato (2018).
더 중요한 점은 노동 분배율은 앞으로 계속 하락할 것이라는 점이다. AI로 인한 자동화는 인지 노동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며 노동의 몫을 잠식할 것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노동자들은 오늘 당장 뭔가를 나누자고 하겠지만, 10년뒤 분배될 대상이 있을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만약 로봇에 의해 모두 대체된다면, 그 뒤에는 어떤 논의를 할 것인가?
사물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이야 말로 세상의 불행을 키우는 길이다.
노동조합의 요구에도 이유는 있다. 지난 수년간 기업이 보여준 깜깜이 산식, 비대칭적 적용, 자의적인 격려금 관행은 공감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의 요구가 성과급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한, 그 안의 구조적 모순은 풀리지 않는다.
본연의 의미에서의 성과급이라면 균등 비율 분배가 아니어야 하고, 균등 비율 분배라면 그것을 성과급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 만약 그래도 균등 비율 분배를 원한다면, 균등 분배의 단위는 기업 내부의 노동자, 주주, 사회 전체 중 그 어느것에도 선험적인 정당성은 없다. 결국 정치적 협상과 합의의 산물일 뿐이다.
지금 한국 사회 앞에 놓인 선택지는 셋이다. 잉여를 임직원끼리 나눠먹어서 지대를 공고화하거나, 주주에게 더 많이 돌려 자본 집중을 가속하거나, 그 일부를 시민기금으로 적립해 AI 시대의 분배 위기에 미리 대비하거나. 어느 길도 학술적으로 자명한 정답은 아니지만,적어도 첫 번째 길을 성과급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일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