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에세이

회사가 모르는 것을 IR이 말하기는 어렵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이른바 삼전닉스가 내놓은 숫자는 정신이 아득할 정도다. SK하이닉스는 8월 19일 4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전량 소각하고, 2025~2027년 누적 잉여현금흐름(FCF)의 50% 이상을 주주에게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이틀 뒤 삼성전자는 올해 90조~110조원을 주주에게 환원하겠다고 밝히며, 3분기에 우선 30조원을 배당하고, 나머지 60조~80조원의 구체적인 방식은 내년 1월 이사회에서 결정한다고 한다. 15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역시 같은 날 별도로 의결했다.

직원에게 돌아갈 돈도 요동쳤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지난해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고 그 기준을 10년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회사는 이를 두고 “명확하고 투명한 기준”을 확립했다고 자평했지만, 불과 1년 뒤 성과급의 60%를 현금이 아닌 자사주로 지급하는 잠정합의안이 나왔고, 8월 25일 조합원 투표에서 찬반 25표 차로 부결됐다. 다시 협상해야 한다.

수십조원의 투자, 수십조원의 자사주 소각, 수십조원의 배당, 수십조원에 이를 수 있는 임직원 성과급이 며칠 사이 제각각 발표되고 협상되고 뒤집히고 있다. 하지만 이 숫자들을 하나의 자본배분 원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투자자에게 얼마를 돌리고, 직원에게 얼마를 주고, 미래 투자에 얼마를 남기며, 왜 지금 이 방식이어야 하는가. 아마 회사 밖은커녕 회사 안에서도 답이 갈릴 것이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주주환원 발표 다음 거래일 8.7% 하락하자 언론들은 “IR을 이렇게밖에 못하나”라고 질타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반도체를 만들고 수십조원의 투자를 집행하는 기업이 보도자료를 못 써서 시장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진단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않는다.

이는 사실 IR팀이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결정하지 않는 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IR은 경영의 결과다

한국에서는 IR을 회사가 가진 정보를 시장에 뱉어내는 행위쯤으로 생각한다. 영문 공시를 늘리고, 콘퍼런스콜을 자주 열고, IR 담당자를 해외에 보내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IR은 그 정의부터 다르다. 미국의 IR 전문기관인 NIRI는 IR을 홍보나 단순 공시가 아니라 재무,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증권법을 결합해 기업과 자본시장 사이의 양방향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적 경영 책임으로 정의한다. IR은 이미 결정된 내용을 예쁘게 포장해 전달하는 말단 기능이 아니라, 시장의 질문을 다시 경영진과 이사회에 전달해 다음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경영시스템의 일부인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 수준의 IR을 하려면 회사 내부가 먼저 글로벌 수준이어야 한다. 경영진과 이사회가 회사의 어젠다와 기회, 위험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어떤 정보와 가정을 바탕으로 투자와 배당, 자사주 매입, M&A를 결정하는지 알아야 한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그 결정에 반대했으며, 누가 결과에 책임지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회계학에서도 기업투명성을 단순히 공시량으로 보지 않는다. 투명성이란 기업정보를 생산하고, 수집하고, 검증하고, 유통하는 시스템 전체의 산출물이다(Bushman et al., 2004). 따라서 정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망가져 있으면 공시문 몇 장을 추가하던 말던 투명성은 높아질 수 없다.

그렇기에 기업의 외부 예측가능성은 내부 예측가능성을 넘어설 수 없다. 투자자가 회사의 다음 결정을 예측하려면 회사의 임원들이 먼저 자기 회사의 다음 결정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알지만 회사는 모르는 것

회장이 머릿속으로 전략을 알고 있다는 것과 회사가 전략을 알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회사가 안다는 것은 판단이 공식적인 계획과 의사결정 기준에 들어가 있고, 필요한 정보가 경영진과 이사회에 공유되며, 어느 조직이 어떤 권한을 행사하는지가 문서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같은 기준이 작동하고, 사후에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한국 기업에서 법적 권한은 실질 권한과 일치하지 않는다. 공식 조직도에는 이사회가 있지만, 실제 조직도에는 그룹 전략조직과 회장실이 있고, 때로는 어느 조직도에도 적히지 않은 보고선이 존재한다.

조직경제학은 이를 formal authority(법적 권한)와 real authority(실질 권한)의 차이로 설명한다. 전자는 법적으로 결정할 권리이고, 후자는 실제로 결정을 통제하는 힘이다(Aghion and Tirole, 1997). 이사회가 법적 권한을 갖고 있어도 정보와 실질적 거부권을 다른 조직이 장악하고 있다면, 실제 권한은 이사회에 있지 않다.

결정하는 사람은 설명하지 않고, 설명하는 사람은 결정하지 않으며, 법적 책임을 지는 이사회는 결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떨어져 있는 것이다.

어느 대기업 임원에게 “이 안건은 어디서 결정됩니까”라고 물었을 때 이사회, 전략실, 회장실이라는 세 가지 답이 나온다면, 그 회사는 IR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로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권한과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는가?

기업가치 극대화가 기업의 목적이라면 외부에 감출 전략은 있어도, 내부에서 의사결정 기준과 책임까지 감출 이유는 없다. 신제품 개발계획을 경쟁사에 숨기는 것과, 그 계획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승인하는지 회사 내부에서도 모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문제는 대주주의 지배력 유지, 승계, 개인의 세금, 다른 계열회사의 이해처럼 개별 상장회사 자체의 장기적 이익과 반드시 일치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변수가 의사결정에 끼어들 때 발생한다.

회사의 목적함수가 여럿이고, 그중 몇몇은 입 밖에 낼 수 없다면 규칙이라는건 만들 수가 없다. 지배권 유지를 자본배분 원칙에 적을 수도 없고, 승계 편의를 투자심사 기준에 넣을 수도 없다. 규칙을 적는 순간 공식 목적과 실제 결정 사이의 괴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칙 대신 재량이 남는다. 회의 대신 비공식 보고가 늘고, 문서 대신 구두 지시가 작동하며, 정보는 소수에게 집중된다. 이사회에는 대안이 충분히 비교된 뒤의 결론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안건이 올라온다. 이때의 불투명은 단순한 결함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말할 수 없는 목적을 작동시키기 위한 기능이 된다.

그 결과 내부 정보환경부터 망가진다. 사업부는 객관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보고하기보다 위에서 원하는 결론을 추측해 보고한다. 나쁜 뉴스는 걸러지고, 리스크는 축소되며, 새로운 기회는 어느 실권자에게 가져가야 할지 몰라 사장된다. 계획과 예산은 미래 행동을 구속하는 기준이 아니라 이미 내려진 결정을 사후에 정당화하는 문서가 된다.

누군가는 알고 있지만, 회사는 조직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회사가 투자자에게 자기 전략을 설명할 수 있을 리 없다.

현금흐름의 크기보다 무서운 귀속위험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 우리는 미래 현금흐름의 크기와 시점, 위험을 따진다. 그러나 한국 기업에는 하나의 위험을 더 추가해야 한다. 기업이 창출한 현금흐름이 어떤 규칙에 따라 누구에게 귀속될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다.

SK하이닉스의 사례가 이를 정확히 보여 준다. 회사는 8월 7일 용인과 청주 공장에 54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12일 뒤에는 40조원의 자사주를 매입·소각한다고 했다. 직원에게는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약속했고, 그 지급방식을 다시 현금에서 주식으로 바꾸려 했다.

회계적으로 영업이익의 10%와 FCF의 50%는 같은 단계의 숫자가 아니다. 성과급은 비용으로 먼저 인식되어 영업이익과 현금흐름을 줄이고, 대규모 설비투자도 FCF를 감소시킨다. 주주환원은 그 뒤 남은 현금흐름에서 이루어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결정들은 하나의 자본배분 체계 안에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인건비와 성과보상이 필요한가. 얼마를 재투자해야 하는가. 불황에 대비해 어느 정도의 현금을 남겨야 하는가. 그 뒤 남는 잉여를 배당과 자사주 매입 사이에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것이 이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그런데 직원에게는 “영업이익의 10%”를 제시하고, 주주에게는 “FCF의 50% 이상”을 제시하며, 투자자에게는 “54조원 투자”를 제시한다. 각 이해관계자는 자기 앞에 놓인 퍼센트만 볼 뿐, 회사 전체의 식은 볼 수 없다. 직원은 영업이익 10%가 현금으로 들어올지 주식으로 들어올지 매년 협상해야 한다. 주주는 FCF의 50% 이상을 돌려받는다고 들었지만, 그 FCF를 계산하기 전에 얼마가 성과급과 투자비용으로 빠져나갈지는 별도의 의사결정과 교섭에 달려 있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주주환원 총액은 최대 110조원이라고 밝혔지만, 30조원을 제외한 나머지 60조~80조원을 배당으로 지급할지 자사주를 매입·소각할지는 내년 1월에 결정한다. 같은 보도자료에서 임직원 보상용 자사주 15조원 매입에도 “주주가치 증대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힌다. 주주에게 귀속되는 환원과 임직원에게 귀속되는 보상의 범주마저 한 호흡 안에서 뒤섞인다.

시장이 묻는 것은 110조원이 크냐 작으냐가 아니다. 나머지 돈을 누가, 어떤 정보와 기준으로, 언제 결정하는가. 그 결정은 기존 정책에 의해 얼마나 구속되는가. 다음번에도 같은 규칙이 적용되는가.

우리나라 기업의 IR팀이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건 불가능하다. 아직 이사회가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라, 그 결정을 생성하는 규칙이 회사 내부에 분명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단순히 주주환원이 적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돈을 번 뒤 그 돈의 귀속 규칙이 바뀔 수 있다는 위험, 즉 주주의 청구권이 사후적 협상과 실질 권력자의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위험이 가격에 반영되는 것이다.

밸류업이라는 오진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이 스스로 현황을 진단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상황을 평가한 뒤 시장과 소통하도록 설계됐다. 가이드라인도 ‘기업개요-현황진단-목표설정-계획수립-이행평가-소통’이라는 친절한 목차를 제공한다.

언제나 그렇듯 겉으로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숨어있는 중요한 전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상장회사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실행하는 하나의 일관된 의사결정 주체라는 전제다.

하지만 그러한 전제는 한국 기업에서 무너져 있다. 법적으로는 이사회가 계획을 승인하지만 실질 권한이 그룹 전략조직이나 지배주주에게 있다면, 밸류업 계획은 회사를 구속하지 못한다. 회사가 ROE 목표와 배당성향을 공시해도 실질 권한자가 다른 목적에 따라 계획을 뒤집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계획이 아니라 그 시점의 기대사항에 불과하다.

투자자가 알고 싶은 것은 “목표 배당성향이 몇 퍼센트인가”가 아니다. 그 목표은 어디서 어떨게 정해지고 누가 바꿀 수 있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지배구조 문제를 계획서 작성과 공시의 문제로 번역했다. 병은 의사결정 구조에 있는데 처방은 계획서 양식이다. 전형적인 공무원식 오진이다. 체온계 눈금을 반듯하게 인쇄한다고 열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회계는 이미 오래전에 같은 교훈을 배웠다. 재무제표의 품질은 그것을 만드는 내부통제의 품질을 넘어설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후적으로 드러나는 숫자만 감사하지 않고 내부회계관리제도를 감사한다. 실제로 내부통제가 취약한 기업은 경영자가 부정확한 내부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에 경영자 예측도 덜 정확하다(Feng, Li and McVay, 2009).

그런데 IR과 밸류업에서는 여전히 결과물만 요구한다. 공시를 늘리고, 영문으로 번역하고, 목표치를 적고, 이행 여부에 동그라미를 치게 한다. 정작 그 목표가 어떤 정보와 기준으로 만들어졌는지, 실제로 누가 결정했는지, 이사회가 어떤 대안을 검토했는지는 묻지 않는다.

이는 공시 매뉴얼을 하나 더 만들어서 IR팀에 던져주자는 뜻이 아니다. 투자, 차입, 배당, 자사주, 임직원 보상, M&A, 계열사 거래를 하나의 자본배분 정책 안에 넣고, 각각의 의사결정 권한과 우선순위, 예외 조건을 이사회가 사전에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을 공식 의사결정 구조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대주주나 그룹 차원의 이해가 개입한다면 그 이해상충을 이사회에 공개하고, 독립된 이사들이 상장회사 자체의 이익에 비추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기존 정책에서 벗어났다면 얼마나 벗어났는지, 누가 승인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시장에 설명해야 한다.

IR 담당자도 결정이 끝난 뒤 보도자료를 전달받는 사람이 아니라 전략과 위험, 자본배분 논의에 앞단부터 참여하고, 투자자의 질문을 이사회에 직접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영문 공시를 하고, 글로벌 투자자를 만나고, 화려한 밸류업 보고서를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챗GPT에게 던져주면 끝날 일이다. 형식은 이미 충분하다.

그러나 공식 조직 밖에서 결정하고, 말할 수 없는 기준으로 돈을 나누고, 이사회에는 결과만 올린 뒤 IR팀에게 그 결정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라고 하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 기업에 필요한 것은 더 유창한 IR이 아니다. 실질 권한과 법적 책임을 일치시키고, 상장회사가 자기 전략과 자본배분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가 되게 해야 한다. 회사가 무엇을 위해, 어떤 정보에 따라, 누가 결정했는지를 조직적으로 알게 해야 한다.

회사가 자신을 알게 되면 시장과의 소통은 그 다음에 따라온다. 한국 기업의 IR이 부실한 것은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